화평마을 문화방/책방

[책]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화평마을 2020. 3. 25. 12:32

마음을 토닥여주는 그곳, 굿나잇 책방.



 

겨울, 눈내리는 밤. 

시골 오래된 집에 자리한 굿나잇 책방.

 



 

처음에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먼저 봤었다.

어머, 잘생긴 서강준이네! 하며.

잠시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겨울, 난로가 있는 책방의 풍경이었다.

드라마는 그 뒤로 보지 못했는데, 궁금해서 찾아보다 보니 원작이 책인걸 알았고 구입해서 읽기 시작.

 

굿나잇 책방 주인의 이름은 임은섭.

고향에서 책을 사랑하던 노부부가 살던 오래된 기와집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입시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해원이 이모가 사는 북현리에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겨울이 와서 좋은 이유는 그저 한 가지.

내 창을 가리던 나뭇잎들이 떨어져

건너편 당신의 창이 보인다는 것.

크리스마스가 오고, 설날이 다가와서

당신이 이 마을로 며칠 돌아온다는 것.


오랫동안 해원을 마음에 담았던 은섭이 해원의 질문에 허둥지둥 하는게  귀여웠다.

은섭은 매일 밤 블로그에 글을 썼는데, 소소한 이야기들도 재밌었지만 은섭이 쓴 블로그 글이 너무 좋았다. 

그 글들 중에는 책방 이름이 굿나잇 책방인 이유가 나오는데, 


어느 밤, 새벽이 올 때까지 잠 못 들고 서성이다 문득 생각했어.

이렇게 밤에 자주 깨어 있는 이들이 모여 굿나잇클럽을 만들면 좋겠다고.

서로 흩어져 사는 야행성 점조직이지만, 한 번쯤 땅끝 같은 곳에 모여 함께 맥주를 마셔도 좋겠지.

그런 가상의 공동체가 있다고 상상하면 즐거워졌어.

누구에게도 해롭지 않고 그 안에서 같이 따뜻해지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로에게 굿나잇, 인사를 보내는 걸 허황되게 꿈꾸었다고.


은섭의 따뜻한 마음이 잔잔하게 울리는 대목이었다.

해원이 은섭에게 빠지는 순간을 묘사한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해원의 시선은 저절로 은섭의 모습을 찾아냈다.

스케이트화를 신고 목에 호루라기를 건 은섭이 얼음판을 오가며 넘어진 아이들을 일으켜주고 있었다.

아이가 뭐라고 말했는지 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그녀의 입가에도 어렴풋 미소가 스쳤다.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인데도 일렁이듯 가슴이 설다.

"사랑에 빠진 거야......"

혼잣말 같은 속삭임이 바람결에 흩어졌다.


눈에 선히 그려지는 것 같은 장면에서 나도 해원이처럼 은섭에게 빠진 순간이었다.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떠나는 해원.

끝이 정해져 있음을 아는데도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은섭.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눈이 와.

너는 자는데.

나 혼자 깨어서 이 함박눈을, 

밤눈을 보고 있네.


잔잔한 이 책의 유일한 갈등이라면 해원의 과거와 은섭의 과거. 

폭력적이었던 아버지와 그를 죽인 엄마는 오랫동안 해원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그날의 진실을 알게된 해원과 그녀를 담담히 감싸주려했던 은섭.

 

사실 나는 은섭의 단단하고 따뜻한 마음이 참 부러웠다.

내가 은섭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 처럼 단단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가끔은, 그 마음이 흔들리곤 하지만.


오랫동안 생각날 은섭의 말이었다.

 

은섭을 향해 어두운 밤, 산길을 나섰던 해원이의 마음과

묵묵히, 또 담담히 해원을 기다려 준 은섭이의 마음이 왠지 찡했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외에도 이야기의 전반에 드러나는 타인을 향한 따뜻함.

나도, 너도 우리는 불완전하고 상처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를 드러내고,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참 좋았다.

 

 

눈내리는 북현리.

정말 그곳 어딘가에 굿나잇 책방이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따뜻했다.

 

마지막 작가의 한줄까지 완벽했던 책.


독자분들.

읽히지 않는 책은 비치지 않는 거울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거울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지니고 거기 있겠지만, 대상이 비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고독하겠지.

창밖으로 손바닥에 올린 거울 한 조각을 내밀어, 초여름의 햇빛과 밤의 달빛을 그 안에 담고 싶다.

무언가를 비추고 싶다.


 

 

2020년 3월 15일 읽고, 25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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